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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새들의 낙원-의심의 한계

점심시간이 되자 레이첼은 화장실 앞으로 갔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직원들은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지만 레이첼은 하루일과 중 가장 조용하고 누구의 간섭도 없는 점심 전 담배를 피우는 시간을 즐겼다. 그날 점심은 고등어 구이였다. 밥을 다 먹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최고참 직원이 먼저 나와 의자 2개에 앉아 다리를 뻗어 있었다. 그의 자리는 항상 거기였고 다른 누구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레이첼은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레이첼이 말을 꺼냈다. “형님, 저는 형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가정교육은 잘 못받았지만 어르신은 존경합니다”. 최고참 직원은 아무 말이 없없다. 오후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B과장이 가장 힘든 일감을 가져왔다. 발끝에서 머리 위 1미터 가량 종이상자 꾸러미를 포장해 올리는 일이었는데, 가장 힘들다는 건 꾸러미 두께가 두꺼워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여서였다. 그런데 그런 일감은 다른 부서에서 여러 명이 하던 일이었다. 레이첼 혼자 해야 했던 것이었다. 레이첼은 오후 10분간 휴식시간까지 버텨보자 하며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휴식시간이 되자 레이첼은 혼자 담배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 세상 사람들은 흑백판단을 하는구나.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이 윤회한다는데, 새가 아니면 자기몸보다 큰 먹이를 노리는 욕심많은 뱀만 존재하는 것인가. 욕심을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게 맞나. 천주교에서도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보는데, 같은 흑백판단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가짜 흑백판단자에 역사가 이렇게도 깊구나. 인간적으로 좋아한다는 감정도 흑백판단으로 몰아가는 게 새인가 욕심으로 판단하는 뱀인가. 레이첼은, 최고참 직원이 가장 모범적인 행동결과를 보고 좋아하게 됐는데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그만두려는 사람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인간을 위한, 인간을 향한 감정이 이리도 하찮은 것인가. 퇴근 무렵이 되자 최고참 직원은 그제서야 힘든 레이첼의 일을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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